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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별꽃
작성일 2014-12-20 (토) 14:26
ㆍ조회: 1148      
성태용교수님 천수경강의 4
12월 들어서자 연이어 눈이 내렸고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시리도록 투명하고 차가운 밤, 별들도 오들오들 떨고 있다.
긴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이 시작된 거다. 오늘 네 번째 천수경 강의가 설법전에서 있었다.
감로의 문이 활짝 열렸고 선남선녀들 얼굴은 법열로 발그레했다
.

지난 시간에 백천삼매돈혼수百千三昧頓薰까지 공부했지요?
백천 가지 삼매에 한꺼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삼매는 계,정,혜 삼학 중에서 정에 들어갑니다. 정의 기본은 계율입니다. 그러나 너무 고정적인 계율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나는 어떤 올바른 삶의 원칙을 세워야할까 하고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계율은 한꺼번에 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대에 맞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계율 중에 비구가 앉아서 소변을 보라는 것이나, 비구니에 대한 엄격한 계율은 남녀 평등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청규를 권합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으로 유명한 백장청규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은 계율에 맞지 않기에 이 청규는 계율을 뒤집는 것이지만 선불교의 부흥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이고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입니다.
즉 이 몸은 광명의 깃발이고 이 마음은 신통 창고가 됩니다. 천수경을 읽는다는 것은 관세음보살님의 천 개의 손과 눈을 받아 지니면서 불보살의 가피를 받아 백천 삼매를 얻고 내가 다시 천 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삶입니다. 소승불교에서는 몸에 대한 탐착을 벗어나기 위해서 부정관이나 백골관을 닦을 것을 권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 광명으로 바꿉니다. 세친보살이 <불성론>을 지은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신,구,의 삼업을 신밀, 어밀, 의밀의 삼밀로 바꾸어야합니다. 자기 존재가 변화하면 세상이 변화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주변을 밝히는 창조적 존재로 탈바꿈해야합니다. 이것을 불세계를 장엄한다고 합니다.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진로는 루와 함께 번뇌를 뜻합니다. 번뇌를 씻어내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하지요. 참고 참고 또 참아야 겨우 사는 세상이 바로 고해입니다. 절에 오면 참회하고 공덕 쌓다가 세상에 나가면 죄짓고 공덕을 무너뜨리는 까먹기 불교를 하면 안 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교가 망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T.V에 스님들이 각목 들고 이단옆차기 하는 장면을 보고는 말을 잊었습니다. 망해도 몇 번을 망했을 불교는 워낙 부처님 법이 워낙 수승하니 망하지 않고 이어져온 것입니다. 서양에서 불교를 보고 핵폭탄급 사상이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삶 속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재앙이 붙을 데가 없고 나날이 행복한 삶이 이어집니다.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이라고 했습니다.
보리방편문으로 단박에 건너 뛰어 부처님 땅을 증득한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보리방편문의 종교입니다. 어떤 방편을 삶 속에서 실천할 지 고민해야합니다. 흔히 방편을 뗏목이나 손가락에 비유하지요. 부처님 당시에 달의 위치와 지금의 달의 위치가 다르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위치도 달라져야합니다. 달을 잘못 가리키는 손가락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잘못된 손가락을 잘라버리라고도 했습니다. 좋은 보리방편에 올바른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요식업을 한다면 좋은 말씀을 벽에 써 붙이고 아침마다 읽고 손님을 받는다면 벌써 자세가 달라집니다. 재가불자들은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부처님 공양의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설거지나 청소, 운전을 하면서도 보리방편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기도, 발원을 할 때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야합니다. 불보살님이 이미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기도는 다만 그것을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속에 온갖 보배를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거지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극락세계는 법장 비구 한 분의 서원으로 건설된 곳입니다.

다음으로 시원육향十願六向이 이어집니다.
시원을 요약하면 사홍서원이고, 육향으로 세계를 바꾸어나갑니다. 시원 중에서 원아속도일체중이 중요합니다. 일체중생을 속히 제도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나란 곧 무아이고 연기론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 내 마음만 따로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천겹만겹 그물코에 연관된 연기론적 존재입니다. <유마경>에 중생이 병드니 보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무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첫걸음은 내 주변에 아픈 중생을 돕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밝음의 광원, 자비의 광원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기독교와는 달리 이성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자들은 기독교인들처럼 열심히 경전을 읽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워 경전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저는 특히 금강경과 유마경을 좋아합니다. 금강경은 잔잔하지만 유마경은 신바람 나는 경전입니다. 활극을 보듯 강렬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시원에 이어서 육향이 나옵니다.
독송본에 혹 화탕자소멸 지옥자고갈이라고 되어있거든 화탕자고갈 지옥자소멸로 바꾸십시오. 끝이 없는 무간지옥인 아비지옥이 있고, 빠지면 그 고통으로 비명을 규환지옥이 있습니다. 아수라는 끝없이 싸우는 중생이고 아귀는 입은 바늘만 하고 배는 수미산만해서 아무리 먹어도 기갈을 채울 수 없는 중생입니다. 아귀의 모습은 히말라야산 만한 금덩어리가 있어도 욕심을 그치지 않는 우리들 모습입니다. 축생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우리들은 불보살의 가피를 받아서 이러한 세상을 바꾸는 창조의 근원적 존재로 거듭 나야합니다.

저는 나옹화상발원문을 좋아합니다. 그 발원문을 읽다보면 가슴이 울컥해집니다.
"바라오니 이내몸이 세세생생 어디서나/ 언제든지 반야에서 퇴전않게 하옵소서
우리본사 스승이신 석가세존 용맹처럼/ 높고 깊은 큰 깨침은 노사나불 경지처럼
날카롭고 명석하기 문수보살 지혜처럼/ 넓고크온 실천력은 보현보살 행원처럼
가이없는 몸나투기 지장보살 원력처럼/ 대자대비 관음보살 서른둘의 응신처럼
시방세계 어디든지 인연 따라 나투어서/ 중생들을 이끌어서 무위세계 들게하리.
내이름을 듣는이는 삼악도를 면케하고/ 내모습을 보는이는 모두해탈 얻게하되
이와같이 교화하기 항사겁이 다하도록/ 필경에는 부처없고 중생마저 없어지다.
바라오니 천룡팔부 한량없는 선신이여/ 저희들을 옹호하여 멀리가지 마시옵고
어려운일 당할곳에 어려운일 없게하며/ 이와같이 크나큰원 이뤄지게 하옵소서
시방세계 항상계신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께 지성귀의 하나이다."

불교는 감응의 종교입니다. 자꾸만 빌고 달라는 종교가 아닙니다.
나의 위상이 부처님과 같아져서 나의 서원으로 이 세상을 극락으로 바꾸는 종교입니다.
대승의 참된 도리가 이 천수경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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